2주. 넉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안 요청서를 받아들고 일정표를 봤을 때, 솔직히 여유롭다고 느꼈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제안서를 처음 써보는 분들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분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2주면 많지 않냐고.
그런데 결과는 늘 같았습니다. 마감 전날 밤,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는 15년째 IT 회사에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앱, 서버 프레임워크, 푸시 엔진 솔루션을 기업과 공공기관에 제안하는 일입니다. 그 세월 동안 제안서를 수십 번 썼습니다.
그리고 초반에는 정말 매번 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1. 2주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진짜 이유
제안서는 본문 하나만 내는 게 아닙니다.
원본 제안서, 요약본, 발표용 PT, 때로는 정량제안서까지. 하나의 제안이 실제로는 서너 개의 결과물로 쪼개집니다. 그걸 처음부터 알고 시작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실감을 못 했습니다.
2주 중 첫 1주일은 방향 잡고 자료 모으다 지나갔습니다. 남은 1주일에 본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요약본 만들고 PT 다듬고 나니 정량제안서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결국 마감 전날 밤,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장 대충 썼습니다.
그게 어떻게 됐냐고요.
그 제안은 떨어졌습니다.
2. 3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대학교 입찰 실격의 기억
더 뼈아팠던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모 대학교 시스템 구축 입찰이었습니다. 공동이행 사업이라 파트너사와 함께 제안서를 작성했습니다. 공동이행은 두 회사가 사업을 나눠서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그만큼 각 회사의 역할과 책임이 제안서에 명확하게 담겨야 합니다.
저희는 그 부분을 꽤 잘 준비했습니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했습니다. 담당자를 만나고, 현행 시스템의 불편함을 들었고, 그걸 제안서에 정확하게 녹였습니다. 기술도 맞았고, 가격도 맞았고, 내용도 자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출 후 서류 검사에서 걸렸습니다.
파트너사가 내야 할 중요한 서류 하나가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파트너사에서 챙기는 줄 알았습니다. 파트너사는 저희 쪽에서 챙기는 줄 알았습니다. 서로 말은 했지만, 확인은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실격이었습니다.
콘텐츠가 아무리 완벽해도, 서류 하나로 입찰 자체가 무효가 됩니다.
3. 파트너사 협업 제안서가 두 배로 복잡해지는 이유
혼자 쓰는 제안서도 이런데, 파트너사와 함께 쓰는 제안서는 차원이 다릅니다.
누가 어느 파트를 쓰는지 처음부터 명확하게 정하지 않으면, 마감 3일 전에 반드시 이런 일이 생깁니다.
"저는 당연히 저쪽에서 쓰는 줄 알았는데요."
서로 멀뚱히 바라보는 그 상황. 한번이라도 겪어보신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그리고 양식 문제도 있습니다. 파트너사가 보내온 파일 형식이 다르거나, 폰트가 다르거나, 표 스타일이 다르면 합치는 데만 반나절이 날아갑니다.
내용보다 정리에 시간을 쓰는 겁니다. 정말 본말이 전도된 상황입니다.
4. 15년 차 전문가가 제안 요청서를 받는 첫날 하는 3가지 루틴
실패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 제안서를 받는 첫날 하는 일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내용을 채우기 전에 '시간과 서류의 설계도'부터 그립니다.
| 단계 | 핵심 조치 | 기대 효과 |
|---|---|---|
| 1단계 | 결과물 목록화 본문·요약본·PT·정량서·서류 목록 작성 및 마감일 역산 |
발급에 며칠 걸리는 인증서·실적증명서 사전 확보 |
| 2단계 | 파트너사 킥오프 R&R 지정, 제출 서류 목록 상호 확인 및 메일 공유 |
"저쪽에서 챙기는 줄 알았다"는 책임 공백 원천 차단 |
| 3단계 | 표준 템플릿 배포 폰트·여백·표 스타일 통일된 공통 양식 선제공 |
마감 직전 파일 통합 편집 시간 대폭 단축 |
첫째, 제출 결과물 목록부터 씁니다.
본문, 요약본, PT, 정량제안서, 그리고 제출 서류 목록까지. 빠진 것 없이 전부 확인합니다. 각각에 며칠이 필요한지 마감일에서 거꾸로 역산합니다. 특히 인증서나 실적 확인서류처럼 발급에 며칠씩 걸리는 서류는 첫날 바로 신청합니다. 이걸 마지막에 챙기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둘째, 파트너사와 첫날 킥오프 미팅을 잡습니다.
누가 어느 목차를 쓸지, 어떤 양식으로 쓸지, 언제까지 초안을 넘길지. 이 세 가지를 반드시 문서로 정리하고 메일로 공유합니다. 말로만 하면 나중에 다 흐릿해집니다. 제출 서류는 각자 챙겨야 할 목록을 명시해서 서로 확인 사인을 받습니다. 번거로워 보여도 이게 나중에 서로를 지켜줍니다.
셋째, 공통 작성 템플릿을 미리 만들어서 공유합니다.
파트너사에 빈 양식을 먼저 줍니다. 폰트, 여백, 표 스타일이 통일된 파일 하나. 이게 없으면 합치는 데 시간을 다 씁니다. 내용을 고민할 시간에 정렬을 맞추고 있게 됩니다.
5. 지금 제안서를 준비 중인 분들에게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겠습니까.
제출해야 하는 결과물이 몇 가지인지, 파트너사가 있다면 서류 목록을 서로 확인했는지. 이 두 가지만 먼저 점검해보세요.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제출 서류 목록 하나만 뽑아보는 것, 그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진짜 제안서 실력은 잘 쓰는 능력이 아닙니다.
결국 시간을 설계하고, 빠진 것을 미리 보는 능력입니다.
어쩌면 그날 대학교 입찰에서 배운 그 한 가지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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